기록자의 방에 머물다
“Seoul Welcomes You.” 차를 타고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런 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환영한다’는 말의 느낌은 착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책임하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정서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의무적 인사이기에, 큰 의미가 없는 무난한 말인 것이다. 사적인 정서를 공적인 문장으로 바꾸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좀 더 풍부한 태도의 언어를 찾아보자면 ‘환대hospitality’가 있겠다.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은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환대는 단순한 관대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가는 장기적인 삶의 태도이기에, 당연히 환영보다 공적인 목적성이 있다. 그렇기에 결국 공간이 평등을 지향해 가는 역사적 과정을 기술한 위 책을 읽고 나면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러한 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것을 파악해온 몇몇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들 중에는 작가도 있고, 건축가도 있고, 건축 잡지 기자도 있다. 일반 직장인도 있다. 이들은 ‘아키비스트’라는 전문직이 아님에도 인터넷 공간이나 아트 신에서 꽤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자신의 사적 취향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어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왜 서울에 대해 탐구해왔고, 그런 자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꺼번에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2015년, 서울을 방한했던 중국의 중요한 작가 리우 웨이에게 “당신은 서울에게 어떤 도시입니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도농의 경계에 살며 작업을 해온 작가가 해준 “평등한 느낌이 들었다.”는 말은 5년이 지나도록 더 많은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왠지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적어도 1995년 첫 방한 당시 “Traffic.”이라는 짜증스런 단답을 남기고 돌아갔던 한 락 스타가 2015년 “다시 만나 반갑다.”고 활짝 웃던 ‘환영’에의 화답보다는 깊이가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같은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좀 더 철학적인지, 감상적인지에 따라 다르다. 마치 우리가 여행을 다녀왔을 때 얻게 되는 그 무언가에도 ‘수준’이란 게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는 점차 서울을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재해석해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코로나 시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 때론 무의미한 이유는, 역사도 생물과 같아서 대부분의 시간은 세포가 죽고 새로 나듯 부분적 교체의 연속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지금의 어떤 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다. 그렇게 치면 서울에도 도쿄나 뉴욕처럼 근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곳이 많고, 환대할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듯한 장소도 많다. 그러나 이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이 성실한 기록자들에 의해 생동하는 의미를 부여받아 간다. 여기서 ‘근면’과 다른 ‘성실’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끈질길 뿐만 아니라 취향이 주체적이고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삶은 수집을 넘어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신의 아이디를 ‘서울 수집’이라 쓰는 이경민 기록자조차, 그것이 얼마나 겸허한 표현인지 말해주고 싶다. 이번에 그는 특별히 ‘Market’, ‘Route’, ‘Geometry’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서울에 대한 기록을 분류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그간 모아온 수집품들이 어떤 기록의 의미를 띨 수 있는가에 대해, 따로 준비한 질문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이원경 작가는 을지로에서 활동해 온 기획자로서 자신의 경험이 거주민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어떤 차이가 있어왔는지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개중에는 사진 작업도 있는데, 이를 사진 장르로 굳이 분류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사진으로서의 일련의 작업이라기보다는 ‘기록’의 일부로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빌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 놓으니 말이 좀 어려운데, 이원경 작가가 한 지역의 전시, 축제, 사람, 벽화에 대해 아카이브하는 과정에서 등장시킨 몇몇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이 가진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개인이 느껴온 을지로와 그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느끼게 된 동질감과 이질감을 잘 말해주고 있다. 게다가 국가나 구에서 추진한 지역 사업들이 예술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을지로는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며 홍콩 디자인 어워즈(DFA Awards)를 수상하기도 한 방윤정 작가가 서울의 중요한 창작 지대로 인식하고 협업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안채는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공간으로 연출되는데, 거기서 조명은 작품을 비춰주는 기능적인 설비로서의 스포트라이트와, 분위기를 작가의 방처럼 보다 은은하게 해 주면서도 기록가로서의 의미를 보여주는 프로젝트 결과물로서의 ‘빛무늬등’이 조화를 이룬다. 이를 통해 배렴가옥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한 로케이션으로서의 위치와 공공한옥이라는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위치를 동시에 수행한다.
건축 분야에서 중요한 잡지인 에서 일해 온 김예람 기자 겸 에디터는 우리 주변의 건축물과 공간 환경을 이야기함에 있어 도시와 개인의 일상 사이에 산재하는 연관성을 모아 정돈된 결과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요즘에는 건축가의 일상적인 활동이 작업물로 발현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시리즈 ‘오늘의 건축가’를 이어가는 중인데, 이것은 어쩌면 문두에 언급한 사적인 동기가 공적인 목적을 찾아가는 행위를 취재자로서 남긴다는 점에서 무척 유용해 보인다. 나아가 잡지에는 싣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더 소개함으로써, 기자이기 이전에 기록자로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작지 않을 것이다.
한편 <파사드 서울>과 <빌라 샷시>를 저술한 권태훈 건축가는 건축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린 그림이 예술적 미학을 확보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매우 객관적 관찰을 통해 기록하면서도 동시에 주관에 의해 미세한 변형을 가함으로써, 그의 작업이 측정 결과가 아닌 ‘그림’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한 서울이라는 도시를 컨트롤하는 법제의 시간적 흐름이 어떤 환경을 만나고, 만들어 가느냐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주변을 더 복합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평범한 주거 공간도 ‘건축’과 ‘도시 계획’이라는 조금은 어려운 개념을 알아가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음을 환기한다.
“기존의 ‘작가’라는 틀을 깨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왕성한 ‘서울 기록가’들을 전시의 영역으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김정현 배렴가옥 운영자의 말이 건축학자로서의 견해인 동시에 그 안에서의 시각예술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서 아마도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일 ‘배렴의 방’에 설치된 미디어 아티스트 이승근 작가의 작업이 보여주는 직관적 성격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수성이 한편으로는 보편적 이미지가 이 도시 안에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세계적인 대도시이며, 전통과 현대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교감하는 이 도시 안에서 기록자들이 찾아온 호흡과 발자취는 개인의 인문학적 소양이 우리 모두의 예술이 되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지난 5월 기획전시와 마찬가지로 50분간 머무르며 한옥 공간을 천천히 느끼기도 하고 생각 속에 머무르다 갈 수 있는 STAY 시리즈로 꾸려졌다. 작가 또는 기록자들의 방을 합쳐놓은 이 공간에서 여러분들이 그들의 관점과 조우하며 ‘지금-여기의 서울’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 된다면, ‘환대의 공간’을 지향하는 공공한옥 배렴가옥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일이다.
글/ 배민영(배렴가옥 기획전시팀장)
배렴 가옥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9)
2021년 9월 1일부터 2021년 9월 30일까지
오전 10시~ 오후1시, 오후 2시~5시, 6회, 회당 50분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권태훈, 김예람, 방윤정, 이경민, 이승근, 이원경
회당 1팀, 신청자 포함 최대 4인
- 전시 관람은 회차별로 진행되며 한 회차당 50분으로 진행됩니다.
- 전시 관람은 오전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며 총 6회차로 진행됩니다.
- 오후 1시부터 오후2시까지는 점심시간으로 전시 관람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 회차별 1팀 단위로 예약을 받으며, 예약자는 동행하는 일행과 동반 입장이 가능합니다.
무료 관람
- 본 전시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시간당 4인 이하의 관람객을 예약제로 받고 있습니다. 대표 1인이 예약을 하여 동반 3인까지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인원 제한을 엄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본 전시는 무료입장이며 위와 같이 소수 예약제로 진행되는 만큼 NO-SHOW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히 판단하여 예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시 예약은 네이버 예약을 통해 접수받고 있으며, 네이버 예약이 아닌 별도 예약 문의는
이메일 또는 유선으로 문의가 가능합니다.
Mail. seoulbrhouse@gmail.com
Tel. 02-765-1375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9
운영시간 매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월요일 및 공휴일 휴무)
문의 seoulbrhouse@gmail.com
행사 및 전시와 관련된 문의는 이메일로 접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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