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들은 저마다 지어졌던 시대의 고유함을 드러낸다.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건축 재료나 익숙했던 시공방법, 지금은 사라진 법적 제한 등이 그 고유함을 만든다. 때로 시대적 고유함은 강력한 조형이나 장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일정 기간 반복되고 변주된 일부 조형은 특정 용도의 건축물과 결합하여 ‘OO장식=OO용도’라는 공식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1970~80년대 국내 개신교 교회에서 향유된 아치arch가 바로 그런 사례다. 그중에서도 첨두 아치pointed arch는 특별하다.
첨두 아치는 고딕 양식에서 나타난 아치 형태로 아치의 상단 부분이 둥글지 않고 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둥근 아치로 대표되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는 거대한 지붕의 무게를 지지하기 위해 두꺼운 벽체와 작은 창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고딕 양식에 와서 플라잉 버트레스flyꠓing buttress가 외벽의 수직적 하중을 분산시켜 줌으로써 얇은 벽체와 수직으로 긴 창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뾰족한 아치 창이 지구 반대편 한국 교회건축에서 나타난 것은 왜일까? 이는 존 러스킨이 “교회는 곧 고딕”이라고 했던 서구 가톨릭교회의 이상적이며 상징적인 의미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회건축의 이해』에서는 고딕 양식이 비록 가톨릭교회의 전용양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개신교회가 굳이 고딕 양식으로 건축을 해야 할 신학적이며 전례적인 이유는 희박하다고 말한다.¹ 엄격한 전례와 건축양식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었던 가톨릭과는 달리, 말씀 중심의 개신교에서는 양식보다는 오히려 기능적인 공간이 필요했고, 이 기능의 총합인 건물에 어떤 종교적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딕 양식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국내에 도입된 고딕 양식은 실제 고딕의 구조체계와 다른 외형적인 요소의 흉내 내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당시 건축 생산체계가 갖는 제약도 한몫했다. 목조로 흉내 낸 볼트vault, 비 통일적인 구조체계 등 고딕 구조와는 다른 비 고딕적 구조한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² 건축가 박동진1899~1980이 설계한 고려대 본관1934, 중앙고등학교 본관1936, 영락교회1950, 남대문교회1969 역시 철근콘크리트에 의해 구조가 해결되고 고딕 양식은 석재라는 재료를 통해 의장적 특성으로 표피에만 남겨진 사례들이다.³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그다음이다. 국내 상황에 맞게 토착화된 고딕 양식은 한, 두 가지 요소에 집중되어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 중 첨두 아치는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장식을 간소화하는 동시에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가소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창의 형태에 적용되던 첨두 아치는 그 적용 범위를 넓혀 입면이나 파라펫의 장식 요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예배당 진입부를 덮는 거대한 캐노피, 더 나아가 파사드 전체를 관통하는 조형 언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1970~80년대 한국 교회의 급격한 성장과 더불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교회건축은 다양한 변용과 재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 상가 건물에 자리 잡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스쳐gesture가 첨탑 위의 십자가였다면, 교회임을 드러내는 가장 거대하고 상징적인 제스쳐는 바로 첨두 아치였다.
2022 드로잉 리서치 워크샵에서는 이런 역사적, 종교적 컨텍스트를 기반으로 토착화된 첨두 아치의 사례들을 관찰했다. 종교적 상징성이나 심미성보다는 첨두 아치가 가진 기하학적 질서와 건축 어휘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그리고 관념적 논의가 아닌 실체적 결과물을 통해 드러내 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선 하나를 긋기 위해 조형의 생성 원리를 이해해야만 하는 고딕 건축의 첨두 아치와 트레이서리tracery는 감각적인 요즘 건축과 사뭇 다르다. 21세기 현대건축이 창조성을 외치며 끊임없이 새로움에 도전하고 있다면, 고딕 건축은 동일한 유형의 반복 속에서 차별성을 추구했다. 오랜 세월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유지되고 발전된 건축은 얼핏 보기에 모두 유사해 보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축의 표면 뒤에 숨은 무수한 참조선들을 확인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아름다움이 찰나의 영감에 의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동일한 유형 속에서 차별화를 이루기 위한 건축가의 노력은 완전한 자유로 오해된 창조성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유형에 관한 끈질긴 탐구를 통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권 태 훈
1. 이정구, 『교회건축의 이해』, 한국학술정보, 2012, 165쪽
2. 김정신, 『역사, 전례, 양식으로 본 한국의 교회건축』, 미세움, 2012
3. 안창모, <건축가 박동진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1997,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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