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실험실>은 한옥에서의 머무름을 통해 창작자들이 새로운 작업의 영감을 얻게 하는 작가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창작 실험실>에서 탄생한 작업물은 전시 또는 오픈 스튜디오, 워크샵 등 다양한 모습으로 시민들과 만나게 됩니다. 매회 다른 창작자와 만들어 가는, 새로운 배렴 가옥의 모습을 기대해 주세요.
이번 창작 실험실은 시각예술 듀오 나나와 펠릭스 그리고 조숙현 큐레이터와 함께 합니다. 나나와 펠릭스는 노마드의 시선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는 한국 - 핀란드 국적의 아티스트 듀오이자 부부입니다. 배렴 가옥과의 이번 만남에서 나나와 펠릭스는 재개발 현장의 오브제를 중심으로 5주간 설치 작업을 진행합니다.
서울 공공한옥 역사가옥 배렴 가옥은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 형태의 도시형 한옥이다. 배렴 가옥을 거쳐간 인물로는 수묵화가 제당 배렴,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 등이 있는데 가옥명의 기원이 된 배렴의 경우 이곳을 살림집과 동시에 작업실로도 활용한 바 있다. 배렴 가옥은 화가의 작업실로 쓰였던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며 2022년부터 한옥에서의 머무름을 통해 창작자들이 새로운 작업의 영감을 얻게 하는 작가 지원 프로그램 <창작 실험실>을 운영한다. 이번 <창작 실험실>은 시각예술 듀오 나나와 펠릭스 그리고 아트북프레스의 조숙현 큐레이터와 함께한다. 나나와 펠릭스는 노마드의 시선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는 한국 - 핀란드 국적의 아티스트 듀오이자 부부다. 동아시아와 북유럽이라는 다른 토양에서 성장하여 영국과 스페인 그리고 핀란드에서 유학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한국에 정착하여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도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은 각국의 도시와 건축을 자연스레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라면 누구든지 제 나름의 독특한 관심사와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나나와 펠릭스의 경우 각기 다른 주택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동네 풍경,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의 주거 변화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빠른 주거 환경의 변화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찾아내곤 하는데 그러한 ‘아름다움’에는 급격한 변화에 잇따르는 폐허에의 감탄 그리고 흘러가 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이 내포되어 있다. 이번 창작 실험실 프로젝트인 <개발 가치 Development Value>는 1936년 하계 올림픽 건축을 담당했던 독일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 Albert Speer의 ‘폐허 가치 이론’ Theory of Ruin Value (독일어: Die Ruinenwerttheorie)에서 따왔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한 번 만들어지면 천 년이 지나 폐허가 되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축물의 가치를 주장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알베르트 슈페어는 나치 신봉자로 이름을 날린 건축가이며 그의 ‘폐허 가치 이론’은 사상누각이다. 현실감각이 결여되고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나치의 봉합되지 않는 이상과 현실은 ‘천 년을 지속되는 선택된 건축’이라는 엉뚱한 망상을 낳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판타지가 당시에는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나나와 펠릭스의 ‘개발 가치’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폐허 가치의 모순을 풍자적인 코드로 작업에 사용 한다. ‘천 년의 신화’를 신봉하는 사상과는 대조적으로, 빠르게 지어지고 빠르게 허물어지는 한국의 도시 건축 풍경의 ‘개발 가치’를 작업과 전시로 시전해 보고자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2016년 《아파트 숲이 된 북서울》 전시를 통해 현재 답십리, 안암, 상계 등을 아우르는 서울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북서울이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어떠한 토지구획정리사업과 택지개발정책에 의해 현재의 아파트 주거 건축 지역으로 재편되었는지를 현장감 있는 전시 도구와 실증 자료를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손정목 교수의 흡사 대하드라마와 같은, 서울의 도시 개발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시리즈에서도 상당 부분을 서울의 도시 주거 계획이 아파트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서술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공화국에 대한 정부 차원의 도시기획과 대중들의 신화에 가까운 열망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임동근, 김종배, 2015) 등의 저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개발과 재개발의 풍경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창작의 영감으로 작용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강남문화재단과 함께 2019년 협력한 전시 《SeMA 컬렉션 : 아파트》에서는 권순관, 유정미,정보영 등 18명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관련한 주제로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나나와 펠릭스의 <개발 가치>는 섣부른 판단이나 비판을 유보한다. 작가의 눈에 포착된 것은 우리가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고 보존하고 싶어하는 ‘한옥’의 가치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시전하고 있는 ‘개발 가치’로, 이를 함축적인 시각 작품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나타나는 시각 효과와 관객들의 반응에 주목한다. 배렴 가옥에서 처음 선보이게 될 <컨템포러리 수석>은 가옥 내부에 진열되어 있는 수석에서 착안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수석은 주로 실내에서 보고 즐기는 관상용의 자연석이다. 나나와 펠릭스는 수석을 분류하는 몇 가지 기준, 즉 ‘두 손으로 들 정도 이하의 작은 자연석일 것,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일 것, ‘산수미의 경치가 축소되어 있고 기묘하거나 회화적인 색채와 무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 ‘대자연은 곧 나요 나는 대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동양적 사상 감정에 충실할 것’ 등에 따라 재개발 예정지에서 시멘트, 벽돌, 타일, 철근 등의 파편 덩어리를 수집한다. 그들이 채취한 일명 ‘현대 도시 수석’은 전통의 수석과 함께 병렬 배치되며 배렴 가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의 호흡을 대조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신작 <컨템포러리 수석>과 더불어 구작도 포함되어 있다. 나나와 펠릭스의 기존 작업은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 또는 예술 형식에 현대적인 요소를 접합한 것이 많다. 이런 현대적인 요소에는 작가가 도시 건축 전반을 바라보는 비교 대조적인 관점과 함께 가치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던지는 위트있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대청에 펼쳐진 <일월오봉아파트고속도로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병풍 작품 <일월오봉도>를 재해석한 작업이다. 6폭의 병풍에 한국의 산수를 타고 흐르는 고속도로 그리고 이를 따라 길게 늘어진 아파트 군집이 마카펜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서울의 도로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실제 아파트 풍경이기도 하다. 나나와 펠릭스가 참여하는 2022년의 첫번째 창작 실험실 <개발 가치 Development Value>는 5월 17일부터 6월 19일까지 열린다. 5월 17일부터 6월 8일까지는 나나와 펠릭스가 배렴 가옥에 머물며 신작 <컨템포러리 수석>의 작업과 설치를 진행한다. 설치 프로젝트 종료 다음 날인 6월 9일부터 6월 19일까지는 신작과 구작이 함께 전시되고 관련 내용은 연말에 발간될 <창작 실험실> 자료집에 모두 담길 예정이다.
조숙현 | 전시기획자 / 미술평론가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9
운영시간 매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월요일 및 공휴일 휴무)
문의 seoulbrhou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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